연주와 비평의 상호 관계 - 정순영(국가대표 음악평론가)

음악평론가 정순영의 음악 에세이

연주와 비평의 상호 관계 - 정순영(국가대표 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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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주와 비평의 상호 관계 ]


국가대표 음악평론가 - 정순영


현대에 사는 우리는 넘쳐나는 작품과 연주자들을 마음만 먹으면 무대에서 만날 수 있다. 남녀노소 선택 조건도 없이 기호에 맞게 연주를 들을 수 있어 예술의 천국 같은 느낌도 든다. 그러나 작품과 연주에 따른 평가도 없어서는 안 될 요소임은 틀림없는데 유독 한국에서 비평의 비중은 미흡함마저 드는 양상이다.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 하이펫츠는 그의 천부적 기량을 통해 음악을 즉물적으로 표현하고 청중에게 압도적인 감흥과 박수를 받는다. 이것은 악보 속에서 자신만의 독창성과 인격적인 해석을 끌어내는 매력을 보여준다고 말할 수 있겠다.

음악을 꾸밈없이 연주하고 하이펫츠의 음색을 만들기 때문에 그의 연주는 누구에게나 통하는 일정 방정식이 성립된다. 크라이슬러도 연주의 미에 집중한 연주자로 비엔나의 커다란 독자성을 형성하고 음악적 미감을 높이는 데 공헌했다. 세계적인 지휘자였던 카라얀도 초기에는 토스카니니의 지휘법을 직설적으로 표현했으나, 후기에는 자신만의 세계를 개척하고 현대적 감각을 실은 지휘자로 변화한 것이다.

 

이 같은 과정은 많은 연주의 경험이 가져다준 결과라고 생각된다. 연주는 악보 속의 작곡가의 사상과 나타내려고 하는 의지와 취지를 역행해선 안되며 연주자의 재창조적 권리를 억압해서도 안된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작곡가와 연주자는 마치 마라톤의 릴레이처럼 상호 협조적 역할을 해야 바람직한 연주가 탄생할 수 있다. 그러나 시간 예술인 연주는 그 결과를 남길 기록이 필요하다고 본다.

비평의 관점에서 볼 때 연주와 비평은 매우 밀착된 관계이며, 음악적 어법을 재조명할 수 있는 필수적 단계이다. 음악적 어법이란 연주와 비평 간의 상호 소통될 수 있는 음악적 해석을 말하며 시간 예술인 연주 체험에 대해 실제적 평가를 말하는 것이다. 만약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마르타 아르헤리치가 차이콥스키 <비창>을 연주했다면 사람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겠으나, 테크닉의 수위는 비슷할 것이다. 우리가 작품을 감상한 후, 그것에 대한 평가는 반드시 수반돼야 연주의 기록이 되며 연주자도 연주 당시를 재점검할 수 있는 계기가 되는 것이다. 형식미와 절대음악의 객관성을 주장한 비평가 한슬릭(Hanslick, E. 1825-1904)는 음악은 연주이지만 유희는 아니다. 연주가는 음향적 형식의 범위를 넘는 음악적 주제를 구해서는 안된다고 했다.

, 음악 이외의 소재를 갖지 않는다는 것이다. 연주가가 작품을 옳게 인지하고 이를 무대에서 전달할 때는 독선적이며 주관성이 강한 해석은 피해야 할 것이다. 자칫 작곡자의 의도에 빗나간 작품이 될 수 있고, 청중에게도 공감을 줄 수 없기 때문이다. , 작품의 배경과 취지를 파악하고 시대적 조류를 수용하는 노력과 함께 옛날 작품도 현대 감각에 맞게 새롭게 해석하는 것도 필요할 것이다. 비평가는 작품을 감상할 때, 같은 작품을 놓고도 매번 평가하는 각도가 달라지는 양상을 볼 수 있다.

 

그것은 시대와 장소, 연주자에 따른 차별화가 빚어낸 결과로 생각된다. 보편적으로 객관적인 연주에 중점을 두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어떤 시대이건, 연주자이건, 일정한 작품에 대한 공통성은 있기 마련이다. 더욱이 객관적으로 연주할 때 그것은 선명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객관적인 연주란 개인적인 감정이나 독창적 기교가 섞이지 않은 악보에 있는 그대로 연주하여 작곡가의 취지를 존중하는 연주이다.

 

낭만파 시대에도 연주의 객관성이 강조되어 연주에서 주관성 있는 해석을 배제하고 악보에 충실하고 원래의 관습을 중요시하여 잠재적인 음악의 본질을 찾으려고 했다. 오늘날엔 작곡가의 의도를 파악한 후, 연주자가 재창조하는 것으로 탈바꿈하였고 한 작품을 같은 연주자가 반복할 때, 매번 다른 연주가 된다는 것 사실이 인정되어 올바른 연주에 대한 개념도 변화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올바른 연주에 대한 인식은 연주자의 성향에 따라 차이는 있겠으나, 악곡을 정확히 이해하고 작품이 지닌 예술성을 바르게 파악하여 이를 실행해야 한다. 연주의 의미가 악보에 나타난 실제의 음을 그대로 재현시켜야 하므로 작곡가의 작품의 가치를 높일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고 더욱이 기술적으로 연마된 연주가는 월등한 음악성과 세심한 주의력을 갖추고 작품을 최상의 위치로 끌어올릴 수 있을 것이다.

 

연주자는 매번 연주를 거듭할 동안 자신의 예술성을 평가받아야 그의 음악적인 진로에 도움이 된다. 비평가는 연주가의 이런 노력을 놓치지 않고 작품 배후에 숨겨진 예술성을 어느 정도 표현했는지에 대해 예리한 평가를 하게 된다. 연주자와 비평가는 마치 톱니바퀴와 같은 연계성을 갖게 된다. 만약 이런 이치가 결여된다면 생명력 있는 연주는 기대하기 힘들 것이며 예술적 가치 또한 구할 수 없을 것이다.

 

작곡가는 악보에 표시된 그대로 연주하기를 규정하지만 연주가는 표현성의 한계에 부딪혀 사실상 70% 이상만 접근해도 작곡가의 취지를 표현했다고 생각된다. 그만큼 악보에 있는 그대로 연주되기는 수월하지 않다. 능숙한 연주가일수록 작품에 대한 자신의 예술적 의지와 표현성이 강해 악보에 의존하기 보다 곡의 내면적 해석에 접근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에 대한 반론이 제기되자 점차 작곡과 연주가 철저히 분열되어 각기 독립적인 역할에 충실하게 되었고 주관성 있는 해석의 중요성과 한계에 대해 신중함을 보이게 되었다. 작곡가는 자신의 작품에 대해 세밀한 표현과 작곡가의 스타일까지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아마 작곡가와 연주가 사이의 보이지 않는 분쟁도 이런 점에서 많아졌으리라고 본다. 비평가는 작곡가와 연주가의 상호 관계에서 빚는 마찰을 조율하는 역할이 필요하며 역대의 비평가들도 많은 고민과 문제점을 해결하는 데 노력했다. 여기서 우리는 음악 실천이란 의미를 말할 수 있다. 작곡가-연주가-비평가는 일직선상에서 연계성 있게 놓여 있다. 음악이 정상적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가치 있는 노력이 필요하며 분업화된 세 분야의 활동을 관심 있게 지켜봐야 한다.

우리가 작곡을 말할 때 무엇보다 사상적인 것과 이론적인 것을 바탕으로 정서적인 체험으로 주로 문학적인 소재를 갖고 음악화하는데 그쳤다. 작곡가는 자신의 곡을 직접 연주하는 경우는 물론이고 연주가들에게 부탁할 경우에도 강력한 주관성을 갖는다. 그러나 바람직한 연주가의 모습은 작품을 자기의 인격적인 측면에서 자신의 자아와 성격의 빛을 거울에 비추듯 재현해야 한다.

만약 작품에 대해 작곡가와 연주가 사이에 의견 충돌이 생기면 연주가는 객관적인 해석에 무게를 두고 연주해야 할 것이다. 요컨대 연주의 객관성과 주관성에 관한 문제는 연주가가 절제된 감정 표현으로 악보에 충실하는 것이 두 가지 문제점을 해결하는 지름길이다. 작품이 너무 과도하게 난해하면 그 작품은 일부 전문 연주가에 국한되기 쉽다.

 

현대 음악의 기교적 발달은 전문 연주가들의 대거 출현을 부추 켰고 음악계의 새로운 발전을 가져왔다고 본다. 극도로 연주하기 힘든 작품은 전문 연주가들에게 익숙하여 아마추어 연주가에겐 기피하는 현상까지 생긴다. 현대 음악을 연주할 때 간혹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연주가가 난해한 작품을 미처 이해하지 못한 채 악보에 치중한 연주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연주회는 청중에게 매우 위험한 시도이며 체험이다.

 

연주는 또 다른 행복을 추구하는 예술인데 연주자와 청중 간 호흡이 일맥상통 되어야 바람직한 연주의 원동력을 반영한다. 연주가 단순히 연주자의 무대예술로 끝난다면 시간예술의 자체 한계 내에서 연주의 재정립을 구체화할 수 없다. 그러나 연주에 대한 비평이 따른다면, 시대의 변천에 따른 연주의 통찰력이 재정비될 수 있다.

 

연주와 비평은 긍정과 부정의 상호작용을 갖는 불가분의 관계이다. 연주자는 비평이 반영될 때, 비로소 유기적 발전과 급격한 변형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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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기 누나_200.jpg

정순영; 작곡가, 영화음악평론가, 베스트셀러 작가, 명동성당 오르간 반주자 역임

경희음대 강사역임, KBS-FM 국군의 방송 <정다운 가곡> 진행자 역임,

제16회 신춘음악회 작곡부문 출연, 미국 오하이오 주립대 위촉작품[For Recorder]연주,

서울 예음홀에서 [정순영 작곡발표회] 가짐, KBS-FM 교육방송 주관으로 [정순영 창작 발표회]가짐, 

군산대학교 예술대학 음악과 전임강사역임, 한국국제예술원(구)서울종합예술원 작곡과 교수역임, 

한국 예술평론상 수상,음악 춘추사 평론상 수상, 한국국민악회 회장역임, 한국평론가협의회 부회장, 

서울 작곡가 포럼 부회장, 한국작곡가회 부회장 역임, 동서음악연구회 이사

주요저서: 「민속악과 양악에 관한 비평」, 「가곡 프로젝트」, 「현대음악 후아유」, 

「작곡으로 먹고 살자」,음악 감상과 비평의 이론과 실제-공저」 외 논문집 및 작품집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