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베르트의 '백조의 노래'…사랑의 시종(始終)에 관한 이야기
겨우내 움츠렸던 만물이 소생하고 봄을 알리는 전령 개나리꽃 기운이 가득한 2월 28일 저녁 세종문화회관 체임버홀에서 슈베르트 3개의 연가곡 가운데 옛 애인 테레제의 동경과 생애의 고통을 노래한 <백조의 노래: 사랑의 시작과 끝에 관한 이야기>를 바리톤 이진원과 피아노 조미원이 호흡을 맞춰 진가를 발휘했다.
이진원은 베르디의 오페라 <리골레토>,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 전곡 완주 등 국내 다수의 오페라 연주와 독창회를 거듭하면서 무대 활동이 왕성한 전문 연주가이다. 슈베르트 말년의 이야기를 담은 총 14곡의 연가곡에서 1곡 <사랑의 소식>은 유연한 독일 창법이 고조되고 물결치는 피아노는 가사를 휘감고 선율적인 절정을 만들고 반복적 리듬 교차를 거듭한다.
백조는 죽기 직전에 단 한 번 운다는 속설로 일반적으로 예술가에게 마지막 작품을 상징한다. 31세에 병으로 단명한 슈베르트의 애틋한 생애가 이 곡 구석구석 묻어 있다. 이진원은 독일 리트(Lied)의 매력에 푹 빠진 열정으로 <백조의 노래>를 완주했다. 이번 연가곡은 14곡이 서로 연관성이 없고 하이네의 시편은 슈베르트의 심리적 방황과 우울한 정서를 담고 있다.
이진원은 넘치는 생명력과 현대적 감각을 결합한 낭만성을 강조했다. 특히 가사 표현이 힘차고 성악적 색채가 자유자재로 구사된 즉흥성이 신선함을 준다. 성악 부분은 복잡미묘한 인간의 본성을 적나라하게 표출하며 잠재적 기대 심리를 끌어낸다. 2곡 <병사의 예감>과 3곡 <봄의 그리움>은 상대적 뉘앙스를 주며 이율배반적 감정이입을 갖는다.
전자는 Bb단조의 우울한 분위기로 이끌다가 오페라풍 발성이 격앙되고 피아노의 율동은 힘찬 역동성을 내뿜는다. 후자는 봄의 향기를 담은 가창력과 독일 발성이 피아노를 감싸며 오페라 특유의 교묘한 수완을 보여준다. 귀에 익숙한 4곡 <소야곡>과 5곡 <안식처>는 대립적 이미지를 보인다.
전자는 독일풍의 위엄과 엄숙함이 내재하였고 이진원의 힘 있는 감정묘사로 선 굵은 멜로디를 절묘하게 조합시킨다. 후자는 독일식 창법이 힘 있고 압도적인 감정 분출로 열광적 쾌활함에 도달한 연주다. 7곡 <이별>은 곡명처럼 슈베르트 삶의 희·비극을 담은 가사와 감정묘사에서 서정성 짙고 격정적 슬픔의 여운을 날리며 이별의 서운함을 빼곡히 담아낸다. 슈베르트의 고뇌와 슬픔의 제스처를 하이네의 시에 붙인 이진원은 무게 있고 입체감 있게 풀어내며 저항을 극복하고 영혼에 감동을 주기에 충분하다. 일시적으로 감정이입이 되다가 순간적으로 모호하게 하는 쿠프랭의 액센트 기법도 보여준다.
8곡 <아틀라스>와 9곡< 님의 초상>은 심층적이고 선율적 대비와 리듬 변경이 주는 음악적 액션이 역동적이고 전투적이다. 전자는 빠른 템포로 작곡가의 감정이 얼마나 격상되는지를 생동감 있게 표현한다. 피아노의 연차적 리듬과 화성적 구(句)는 성악을 받치며 빠른 템포와 고음이 맞물려 분노와 업그레이드된 감정을 폭발한다. 후자는 가사를 반복할 때마다 애조띤 슬픔이 가득하고 진지함 속에 소곤거리는 분위기가 무르익는다.
10곡 <고기잡이 처녀>는 백조가 떠 있는 호수의 정경을 예술적 차원으로 승화시킨 이진원의 노련함이 절정에 달한다. 슈베르트의 데카당스적 감수성을 보인 11곡 <도시>는 피아노의 음산한 증화음이 가득하고 사랑을 잃은 남자의 방황하는 모습을 연기력 있고 극적으로 묘사했다.
섬세한 음향적 공간을 최대한 활용하여 피아노와 감각의 물결을 가르듯 전율적 에너지를 발산한다. 더욱 청중을 흥미롭게 하는 것은 그의 노래 속에 응고된 내면세계의 투영이다. 특히 이 곡에서 관습과 도덕을 배제한 열정과 강박적이고 신경증적 심리로 구분된 작곡가의 양면성이 조명되는데 독일 가곡의 가창법과 언어적 색채를 통해 무대 자체의 역동성을 끌어낸다.
12곡 <바닷가에서>는 애잔한 흐름에서 화려한 분위기로 전환되는 변화무쌍한 가사와 피아노의 합세는 노래 속에 비극의 전조를 거듭하며 평화로운 시작에서 과거를 회상할 때 점차 불협화음으로 부글부글 끓는 피아노 위에 노래는 순간순간 통렬하고 비극적 뉘앙스를 준다.
네 마디의 무거운 전주가 저음에서 시작되는 13곡 <그림자>는 슈베르트의 이중 모습을 그리며 피아노 첫 전주는 잦은 변형을 거듭하고 암묵적이며 공포와 경악의 느낌을, 이진원을 고음에 오를수록 에너지를 쏟고 레시터티브로 가사를 읊조린다. 연가곡의 파격적인 기법과 파사칼리아 주제가 잦은 노래에 트레몰로와 포로 타토 주법의 피아노는 장단조의 전형적 충돌을 해결하며 곡 속의 ‘이중환영’을 묘사한다.
요한 아이들의 시(Poem)로 된 14곡 <비둘기 우편>은 밝고 즐거운 독일 가곡의 전형을 살려 비둘기가 주는 축복의 느낌을 명암감 있게 표현했다. 왼손 주제를 받치는 분산화음 반주와 강박을 주며 도약하는 리트는 따뜻한 서정을 담고 유머스러운 노래와 연기력을 아우르며 무대 온도를 높였다. 호소력 짙고 만연된 유쾌함이 자리 잡은 바리톤 이진원은 14곡 완주에서 적절한 타이밍에 곡의 리듬을 타고 감정을 분출한다.
‘사랑의 동기가 죽음을 기다리는 신호탄이 된다.’라는 연가곡 <백조의 노래>의 주제에서 그는 시적 탐구를 극화했고 감정적으로 고양되어 슈베르트 작풍에 접근했다. 어느 인도 고수의 말처럼 “그 박(beat)은 내 코트의 솔기처럼 그곳에 있다.”라고 하듯이 그는 정해진 곳에 박자의 틀을 갖추며 통찰력 있는 감지력으로 최고의 특성을 구체화했다.
정순영 음악평론가 겸 작곡가
출처: 글로벌이코노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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