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의심과 관심이 빚어낸 경계선 밖의 사랑이야기

음악평론가 정순영의 영화음악 평론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의심과 관심이 빚어낸 경계선 밖의 사랑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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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글로벌이코노믹 신문>박찬욱 감독의 이미지 확대보기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

영화 <아가씨> 이후 무려 6년 만에 신작 영화,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은 2022년 칸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받은 화제의 영화다. 한국의 알프레드 히치콕이란 수식어가 붙는 박찬욱 감독이 멜로 서스펜스란 이중적 장르가 내포된 영화이며, 더욱 그가 만들어낸 또 하나의 명반은 비극적인 사랑의 결말을 암시하는 사운드트랙에 있다.

박 감독의 신작 <헤어질 결심>은 예전의 스타일과 다른 연애가 중심이 아닌 남녀의 사랑을 말과 몸짓으로 표현한다. 평소 클래식 애호가인 그는 이번 작품에 말러 교향곡 5번 4악장 Adagietto (아다지에토)를 서사 배경에 담았다. 느리고 서정적인 이 곡은 여러 번 반복되지만 미스터리한 영화의 첫 장면을 잘 대변했고 형사(해준)과 피의자(서래) 사이의 복잡 미묘한 관계를 암시하기에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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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상 말러의 ‘아다지에토’가 부인 알마를 위한 사랑의 세레나데라면 이 영화에선 비극적 사랑의 신호탄으로 보인다. 4악장이 주는 낭만성과 처절한 분위기는 주로 현악기와 하프가 느리게 연주되는데, 영화의 후반부에서 파도가 출렁이는 바닷가와 맞물려 이 곡은 감정선의 극치에 도달한다.

박 감독은 말러의 ‘아다지에토’에서 곡의 아우라를 영화와 결부시켜 처절한 사랑의 단면을 고스란히 재현하고 있다. 이번 영화의 조영욱 음악감독은 멜로 드라마의 기존의 방식에서 벗어나 해주(박해일)과 서래(탕웨이)의 감정에 충실했고 역설적인 배경음악을 통해 그들의 얽혀진 사랑을 마법적으로 풀어냈다.

영화 『헤어질 결심』에서 말러 교향곡 (아다지에토)가 러닝타임 2시간 동안 끈끈하게 이어진 것은, 현악기의 애절한 표현에 구심점을 두고 형사(해주)와 피의자(서래)의 애이불비(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감정을 전하는 것)의 사랑을 여운 있게 전달하려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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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정상에서 벌어진 장면에서 우드블럭과 캐스터네츠 같은 타악기의 연타음은 스토리를 암시하며 긴박감을 상상케 한다. 각 장면이 전개가 빠르고 몽환적인데 각 캐릭터를 부각시키는 바로크음악과 조르디 사발의 영향을 받은 캐스터네츠 효과음이 미스터리한 분위기를 잡아준다.

 


서래가 새를 묻고 고양이를 쓰다듬는 등, 애완용 동물의 애정 표현을 받쳐준 첼로와 캐스터네츠가 복합된 현대음악은 영화의 비극적 결말을 예고한다. 아마 박 감독은 말러 교향곡(아다지에토)을 영화 중에 총 3번 썼고, 주로 두드러진 선 굵은 장면(산, 해준의 붕괴, 바다)에서 파격적이며 잠식으로 이끄는 최면술과도 같은데 이런 점이 화면구성이 좋고 영화 OST의 조합이 독특한 인상을 주는 이유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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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준이 서래에게, 집에선 아내에게 요리할 때 모두 ‘안개’가 배경음악이 된다. 정훈희의 비음 섞인 ‘안개’는 행복보다 마치 숨은그림찾기처럼 끝이 보이지 않는 두려움의 실체와 감당하기 힘든 불행한 만남을 예고하는 전주곡처럼 들린다.

기름봉에서 서래와 해준이 산을 탈 때, 이 영화와 무관한 타악기와 클라리넷의 합성은 처량한 장면의 리얼리티를 한층 감싸는 배경음악으로 남는데 암묵적이고 사운드의 일관성이 보인다. 비금봉 정상에서 비로소 서래에 대한 배신감을 느끼고 해준이 후회할 때 (아다지에토)는 처절한 심정에 무게를 더한다.

이포에서 해준이 자라에게 물렸을 때 연장선상의 ‘안개’ 곡은, 불행한 현실이 밀물같이 다가온 장면과 맞물려 영화 전체의 흐름을 압축하고 있다. 특히 ‘안개’ 곡은 어항 속 물고기가 흐느적거릴 때, 해준이 서래의 냄새를 맡을 때 음악적 맥락을 유지하고 몽상적 이미지를 위해 선율의 윤곽을 불투명 처리한 의도는 최대한 관객의 궁금증을 유발하고 한 번에 해소하려는 조감독의 번뜩이는 기지로 생각된다.

서래의 죽음 앞에 바닷가를 배경으로 해준이 통곡 장면에서 말러(아다지에토)는 다시 한번 활용되는데 떠난 사랑을 아쉬워하듯, 현악기 앙상블은 기억의 파편처럼 영상과 함께 고스란히 흡입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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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 영화제에 참석한 박찬욱 감독(가운데).이미지 확대보기 칸 영화제에 참석한 박찬욱 감독(가운데).



말러의 인생 같은 이번 영화는 서래의 대사, “당신의 사랑이 끝났을 때 나의 사랑이 시작됐죠.”에서 둥둥거리는 타악기의 연타적 사용과 ‘붕괴한 해준’의 장면은 하드 밥 스타일의 즉흥 재즈처럼 선 굵은 음악으로 작품의 질감을 한층 업그레이드하고 있다.

마무리 곡으로 송창식, 정훈희의 듀엣곡 ‘안개’가 이번 영화의 주제를 수면 위로 떠 오르게 한다. ‘안개’는 단어만큼 얽힌 사연도 많지만, 엔딩 크레딧을 장식하는 이 곡은 과거에 대한 향수는 물론이고 현재와 미래의 시·공간을 넘는 암울한 영상에 매치되어 교묘한 시너지를 창출한다.

깔끔한 편집과 마술적 이미지가 편안하게 내재된 영화 『헤어질 결심』은 출연진들의 캐릭터 강한 연기가 탄력을 주며, 양파 껍질을 벗기듯 스토리와 음악의 밀접한 착상이 분명했고 광각의 풍경을 담은 디테일한 사운드트랙이었다. 벨기에의 겐트영화제에서 박찬욱 감독과 조영욱 음악감독의 영향력 있는 한국영화 포커스 섹션을 기대해본다.


정순영 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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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기 누나_200.jpg

정순영; 작곡가, 영화음악평론가, 베스트셀러 작가, 명동성당 오르간 반주자 역임

경희음대 강사역임, KBS-FM 국군의 방송 <정다운 가곡> 진행자 역임,

제16회 신춘음악회 작곡부문 출연, 미국 오하이오 주립대 위촉작품[For Recorder]연주,

서울 예음홀에서 [정순영 작곡발표회] 가짐, KBS-FM 교육방송 주관으로 [정순영 창작 발표회]가짐, 

군산대학교 예술대학 음악과 전임강사역임, 한국국제예술원(구)서울종합예술원 작곡과 교수역임, 

한국 예술평론상 수상,음악 춘추사 평론상 수상, 한국국민악회 회장역임, 한국평론가협의회 부회장, 

서울 작곡가 포럼 부회장, 한국작곡가회 부회장 역임, 동서음악연구회 이사

주요저서: 「민속악과 양악에 관한 비평」, 「가곡 프로젝트」, 「현대음악 후아유」, 

「작곡으로 먹고 살자」,음악 감상과 비평의 이론과 실제-공저」 외 논문집 및 작품집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