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미나리' , 음악적 입장에서 본 미나리 향

음악평론가 정순영의 영화음악 평론

 

영화 '미나리' , 음악적 입장에서 본 미나리 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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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영화사 102년 만에 <미나리>의 윤여정은 미국 배우조합상(SAG) 여우조연상, 영국 아카데미상(BAFTA) 여우조연상, 미국 오스카 여우조연상을 걸머지는 쾌거를 거두어 한국문화예술에 한 획을 거두었다.


이 영화는 이민자의 정신적 고통과 생활 속에서 겪는 아픔을 절실하게 그려낸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특히 ‘미나리’의 주제가 ‘비의 노래’(Rain Song)는 피아노곡-플루트곡- 노래곡 등으로 편곡되어 영화 <미나리>의 장면 효과에 유연하게 작용하고 있다. 


등장인물들은 평범하지만 다채로워 여운을 남겼고, 그들이 입은 80년대 패션도 이색적으로 다가왔다. 외할머니(윤여정), 아빠(스티븐 연), 엄마(한혜리), 아들(엘런 김), 딸(노엘 조), 농장인부 폴(윌 패턴) 등이다.


아빠 역의 스티븐 연이 교포라서 엄마 역의 한예리와의 연기가 우려되었으나, 후반부로 갈수록 연기의 폭도 크고 자연스러운 느낌을 주었다. 장면이 전환될 때마다 음악은 강도를 높인 탓인지 소리가 달리는 트랙에 사용된 음악이 더 기억에 남기도 했다.


아칸소로 이사 와서 아버지의 꿈인 농장을 갖는 것이지만 아내는 이를 못마땅해한다. 이 장면에서 불안한 상태의 여운이 오래 진행되고 암시 음악은 다음 장면에 대한 맥락으로 이어진다.


아들은 건강이 안 좋은 상태로 외할머니의 등장으로 분위기는 반전의 효과를 끌어낸다. 엄마의 친정어머니로서 인정 많고 모성애를 보여주었고, 손자, 손녀에겐 더할 나위 없는 넉넉하고 깊은 사랑을 쏟는 외할머니의 등장은 지금까지의 스토리를 뒤집는 전환점이 된다. 


딸의 부탁으로 어린 외손주들을 돌보기 위해 외할머니는 먼 길을 마다치 않고 한국에서 미국에 도착하여 갖고 온 보따리를 푸는데 그 속에서 고춧가루, 멸치, 한약과 미나리 씨도 들어 있다.


이 장면은 가장 한국적인 어머니상을 꾸밈없이 보여주며 장면이 바뀔 때마다 음악은 사람의 심리에 동기화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이 영화의 OST인 ’비의 노래(Rain Song)’가 영상에 종속적이라는 기본 속성 때문에 자주 삽입되어 영화에 독특한 미학을 선사한다. 


극 중 아빠는 미국몽을 꿈꾸며 아칸소에서 채소 농장을 하며 열심히 살지만, 아내는 불만이 많고 아들의 건강도 좋지 않던 차에 외할머니와 손자의 만남이 이야기의 전개에 박차를 가한다.


할머니와 손자의 만남이 처음에는 즐겁지 않았지만, 우여곡절 끝에 두 사람은 정이 드는데 <미나리>의 음악감독 에밀 모세리 작곡의 주제곡 ‘비의 노래’의 가사 “긴 기다림 끝에 따스함 속에 노래를 부르네.”란 대목이 할머니와 손자의 풋풋한 정을 말없이 표현해낸다.


한예리가 영어 가사를 한국어로 바꾸어 엔딩곡을 직접 부른 이 곡은 전 세계인에게 평범한 한국인 이민 가족사를 잔잔하게 그려냈다는 점에서 68개 영화 단체에서 수상 기록을 세웠다.


이 영화의 주 테마는 한마디로 ‘가능성(possibility)’이다. ‘타국 땅에서 아메리칸드림을 성취할 수 있을까?’라는 화두를 던지고, 그 과정에서 부부의 마찰이 있고, 그 속에서 아이들의 호기심은 커지는데 이런 세심한 장면까지 음악은 영상에 효과적으로 표현되고 있다.


특히, <미나리>에서 아빠와 엄마의 조합이 잘 어울렸고 한국형 가족의 강한 이미지를 부각시켰다. 시대를 초월한 긴장과 여운을 만들어낸 주제곡도 영상과 함께 사운드 디자인의 총체적 개념을 느끼게 할 만큼 세심한 사운드 배치가 잘 이루어졌다.


제이콥이 농장의 꿈을 이룰수록 가정은 위태롭게 되어갈 때 외할머니의 갑작스러운 등장과 손자 사이에 벌어지는 논쟁은 이 영화에서 이제까지 없었던 한국적인 억양과 채취를 묘사하고 있다. 


부분적으로 삽입된 <미나리>의 OST(비의 노래)는 공백의 분위기를 메워주고 영상과의 조합이 잘 어울린다. 정 이삭 감독의 캐릭터 데이빗의 대사, “할머니는 할머니 같지 않아요.”는 연기의 당돌함과 깜찍함을 한꺼번에 보여준다.




데이빗 역의 엘런 김은 어린이지만 지미 카멜 라이브와 엘렌 드제너러스 쇼에 출연하여 놀라운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피아노곡인 주제곡은 장면 효과에 미약했지만 앞으로 전개될 장면의 암시성을 주어 영화 음악을 동기화했다. 


후반부에서 손자의 실수로 농장 창고에 불이 나고 할머니와 손자는 끈끈한 가족애를 보이며 화합의 장면을 연출한다. 이때 음악은 놀라운 사실성을 확보하며 장면과 조화를 이룬다. 화재 장면, 불 속에서 농작물을 건지려는 위험 장면까지도 모든 이민자에게 마음의 공감대를 설정하며 사운드를 받쳐준다.


클라이맥스에서 이 가족은 모든 것을 상실한 듯했지만, 한국에서 할머니의 미나리 씨앗은 훗날 자라나서 아빠와 아들에게 새로운 삶의 희망이 될 것으로 비친다. 


타국의 험난한 땅에서 꿋꿋하게 크는 미나리는 어떤 고난과 절망 속에서도 굽히지 않는 우리네 정서와 혼을 상징한다. 윤여정은 정감있는 한국형 할머니역을 거침없이 연기해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수상자다운 명연기를 했다.


엔딩 크레딧 ‘To All Our Grandma’(모든 할머니에게)는 여운을 남기는 메시지였다. 한예리는 주제가를 직접 부르며 역량을 보였다. 이 주제가는 여러 장면에 방점을 찍으면서 호기심을 유발했고 첨예한 감정 상태를 직접적으로 표현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미나리>의 결말이 석연치 않았다는 것이다. 원래의 시나리오가 수정되어 양로원에서 화투도 못 치고 결국 숨을 거두는 할머니와 나레이션이 사라진 것이 브레드  피트의 영화 제작사 플렌비(Plan B)의 제작비가 부족해서란 점이다. 미완성 결말이지만 매시브 어택의 음악처럼 심리적 분위기를 암시한 영화 <미나리>의 각 영상에 나타난 사운드 트랙은 미완성된 결말 못지않은 기능적 효과를 시사했다. 


<미나리>는 아칸소의 아름다운 자연미를 담은 음악이 장면과 잘 어우러져 있다. 영상과 소리가 하나가 되어 자연적 소재를 음악에 잘 연결하여 심리적 효과를 얻고 있다. 


16곡 중 1곡 ‘Intro’(도입부)를 시작으로 3곡 잔잔한 피아노곡의 ‘Big Country’(위대한 시골)도 아칸소의 풍광과 경운기를 끄는 제이콥의 모습은 시각적으로 음악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5곡 ‘Rain Song’(비의 노래)은 주제가로  전반적 흐름을 주도한다. 음악이 자연에 새롭게 개입한다. 


에밀 모세리는 버클리 음대 작곡 전공자의 경력을 바탕으로 한국 80년대의 배경에 맞게, 이민자의 서글픈 정서에 적합한 사운드를 만들었다. 할머니를 동경하는 손자 손녀의 향수적 멜로디와 간간이 꿈같은 몽상적 사운드가 여러 영상에 꽂혀 있다.


그다지 튀지 않는 기묘한 선율과 리듬이 곳곳에 맴돌고 자리 잡는다. 피아노와 기타와 보컬이 합세하여 다음 영상을 암시하기도 하여 <미나리>는 장면마다 음악에 의해 맥락을 이루고 있다. 


음악은 80년대 코르그 신디의 화음 색으로 첫 장면을 실감 나게 그린다. 이주민의 고달픈 애환이 통기타와 보컬의 배합으로 기묘한 사운드트랙을 형성한다. 에밀 모세리 작곡의 ‘Rain Song’과 ‘Wind Song’을 스테파니 홍이 번역하여 한예리가 불렀고, 모세리가 레전드와 한국 통기타 시대의 곡이 연결고리로 작용한다.


이음악은 판에 박은 선율과 리듬이 아닌 영화 속의 미나리처럼 이민자들에게 생생한 휴머니즘을 보여주는 음악이자 정교한 사운드트랙이었다.


글/정순영(작곡가, 음악평론가)


출처 : 문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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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예술평론상 수상,음악 춘추사 평론상 수상, 한국국민악회 회장역임, 한국평론가협의회 부회장, 

서울 작곡가 포럼 부회장, 한국작곡가회 부회장 역임, 동서음악연구회 이사

주요저서: 「민속악과 양악에 관한 비평」, 「가곡 프로젝트」, 「현대음악 후아유」, 

「작곡으로 먹고 살자」,음악 감상과 비평의 이론과 실제-공저」 외 논문집 및 작품집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