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대호, 현대음악계 신선한 충격…하청노동자서 세계적 작곡가로 (거제신문)
올해의 최우수예술가로 선정된 엄대호 현대음악 작곡가
거제조선소의 하청노동자로 시작해 세계적 현대음악 작곡가로 자리 잡은 엄대호(52)씨. 그는 지난달 12일 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가 주최하는 ‘제44회 올해의 최우수예술가상’에서 심사위원 선정 특별예술가 음악 부문에 선정됐다.
“훌륭한 예술가들 사이에 부족한 제가 큰 상을 받게 돼 놀랐습니다.” 엄씨의 수상 소감이다.
엄씨의 얼굴에 비치는 ‘담담한 희열’은 그를 마치 물과 같은 사람으로 느끼게 했다. 한없이 낮고 미천한 곳에서도 흐르지만 장엄한 힘의 위용을 드러내는 물처럼, 그 역시 하청노동자의 삶을 이어가며 낮은 곳에서 겸손히 흐르고 있지만 음악을 대하는 태도나 말에서는 강인한 힘이 느껴졌다.
‘올해의 최우수예술가상’은 5개 영역, 예술공헌·무용·문학·미술·연극·영화·음악·전통·예술창작·공연·뉴제너레이션·영아티스트 12개 부문의 예술활동 심사를 거친 후 한국 최고(最古)의 예술평론 종합단체가 시상하는 권위 있는 상이다.
엄씨는 20여개국에서 인정하는 이 상을 통해 그의 음악이 국내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공감을 얻고 있음을 인정받았다. 그의 삶은 단순한 음악의 여정을 넘어 인간의 고통, 희망, 그리고 신앙을 담은 치열한 도전의 기록이다.
이번 인터뷰를 통해 그의 음악적 철학과 인생 이야기를 들어봤다.
삶의 고통에서 태어난 음악
엄씨는 경북 문경의 탄광촌에서 광부의 아들로 태어나 중학생 때 교회에서 처음 기타를 잡으며 음악을 접하게 됐다. 지병으로 단명을 우려한 진단을 받았고, 군입대와 취업에도 어려움을 겪었다.
전역 후 재래시장과 중소기업을 전전하며 생계를 이어가던 그는 30대 초반에 바이엘을 배우기 시작하는 열정으로 대구예술대 피아노과에 편입했다.
졸업 후 김천을 거쳐 10년 전 대우조선해양 기술교육원에서 배관기술을 익혀 하청노동자로 일하며 작곡 활동을 병행해왔다. 그의 삶은 노동과 창작 사이에서 치열하게 이어졌다.
“하루 종일 배를 오가며 육체적으로 고달팠지만 고통 속에서도 신앙의 힘이 저를 지탱해줬고, 그 믿음은 제 음악의 가장 중요한 원천이 됐습니다. 인간의 내면 깊숙한 곳에서 나온 절망과 희망, 그리고 신앙이 제 음악을 움직이는 힘입니다.”
오페라 ‘예수 그리스도’, 신앙과 현대음악의 융합
지난 4월 정통 오케스트라 버전으로 발표된 엄씨의 대표작인 오페라 ‘예수 그리스도’는 단순한 종교적 작품을 넘어, 현대음악의 실험적 기법과 깊은 신앙적 메시지가 결합된 독창적인 예술이다. 그는 이 작품을 ‘절대적인 사랑을 음악으로 표현한 결과물’이라 설명하며, 신앙과 예술의 경계를 허물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예수님의 고난과 희생은 저에게 작곡가로서 본질적인 질문을 던졌습니다. 이 작품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한 제 영혼의 기록입니다. 특히 ‘의(義)’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예수님은 제게 삶의 등대와 같은 존재였습니다.”
작품의 하이라이트인 2막 ‘십자가 처형’은 교향적 춤곡이라는 독창적인 형식을 도입해 예수의 희생을 강렬하게 표현했다. 그는 이 장면에 대해 삶의 극단적인 고통이 음악으로 해방되는 순간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밝혔다.
오페라 대본은 음악평론가 정순영 교수와의 협업으로 완성됐다. 엄씨는 인간이 겪는 모욕, 고난, 번뇌 속에서도 ‘의’를 찾아가는 과정이야말로 예수의 삶과 그의 창작 철학이 닮아있다고 덧붙였다. 작품 곳곳에는 이러한 메시지가 깃들어 있어 관객들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
판타가 : 새로운 음악 세계의 창조
2008년 그는 푸가(Fuga)와 판타지(Fantasy)를 결합한 새로운 음악 형식인 ‘판타가(Fantaga)’를 창시했다. 이 형식은 전통 대위법의 엄격함과 현대적 상상력의 자유로움을 동시에 담았다.
그의 바이올린 작품 ‘12 Violin Fantaga’와 오케스트라 작품 ‘정선아리랑 주제의 판타가’ 등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그의 실험은 국내·외 현대음악계에 신선한 충격을 줬고, 미국과 스웨덴 등지에서 공연돼 높은 평가를 받았다.
“음악은 영혼과 세상을 잇는 다리”
엄씨는 자신의 음악이 단순한 예술 작품이 아니라 인간의 영혼과 세상을 잇는 다리라고 강조했다.
“음악은 단순히 소리의 나열이 아니라 사람의 내면과 대화하고, 치유와 위로를 전달하는 도구입니다. 제가 작곡한 음악이 청중들에게 깊은 울림을 줄 수 있다면 그것이 제가 음악을 하는 이유입니다.”
그는 앞으로 교향곡 5번, 피아노 협주곡 등 대규모 작품을 통해 음악적 세계를 더욱 확장할 계획이다.
또 이번 수상을 계기로 거제지역을 위한 쉬운 현대음악 프로젝트와 새로운 앨범 작업에 돌입할 예정이다. 그러면서 모든 악보를 무료로 공개해 대중과의 소통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작곡가 엄대호는 단순히 음악을 창작하는 작곡가를 넘어, 삶과 예술, 그리고 영혼을 탐구하는 철학자다. 그의 음악은 삶의 고통 속에서 희망을 찾고, 세상과 인간을 연결하는 강력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앞으로 그의 음악이 전 세계에서 더 큰 울림을 전하기를 기대한다.
서동인 기자
출처:현대음악계 신선한 충격…하청노동자서 세계적 작곡가로 < 인터뷰 < People < 기사본문 - 거제신문 (geoje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