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돌공 간증이 만든 위로의 찬송 - 문성모 목사의 찬송가 이야기
찬송가 88장 ‘내 진정 사모하는(The Lily of the Valley)’은 고난의 현장에서 피어난 뜨거운 신앙고백이다. 동시에 대중음악이 복음의 옷을 입고 거듭난 찬송가 역사상 가장 흥미롭고 역동적인 배경을 가진 곡이기도 하다.
이 찬송의 가사를 쓴 사람은 영국의 구세군 음악의 아버지라 불리는 찰스 윌리엄 프라이(1838~1882)다. 그는 본래 윌트셔 출신의 평범한 벽돌공이었다. 거친 공사 현장에서 노동의 고단함과 가난을 숙명처럼 짊어지고 살았지만 내면에는 누구보다 뜨거운 신앙심이 자리 잡고 있었다. 또한 금관악기를 비롯한 다양한 악기를 능숙하게 다루는 탁월한 음악적 재능의 소유자이기도 했다.
프라이의 신앙 활동이 본격적으로 빛을 발한 것은 1878년이다. 생계를 위해 하던 벽돌공을 그만두고 세 아들과 함께 ‘프라이 가족 악단’을 결성했다. 구세군 창시자 윌리엄 부스의 사역에 합류하기 위해서였다. 당시 구세군 사역은 경제적 보장이 없는 가시밭길과 같았다. 사회적 시선 또한 냉담했으며 전도를 방해하는 세력도 있었다.
프라이가 이 찬송시를 쓴 시점은 그가 세상을 떠나기 8개월 전인 1881년 12월이었다. 잉글랜드 링컨시에서 열린 구세군 전도 집회에 초청받은 그는 동역자인 윌킨슨의 집에 머물며 자신의 파란만장한 신앙 여정을 간증했다. 그리고 그 뜨거운 고백을 시로 요약해 구세군 기관지인 ‘전쟁의 함성(The War Cry)’에 발표했다. “온 세상 날 버려도 주 예수 안 버려”라는 가사는 평생을 따라다닌 가난과 노동의 고통, 그리고 복음을 전하며 겪은 박해 속에서도 오직 예수만을 유일한 친구이자 안식처로 삼았던 그의 삶이 투영된 생생한 신앙고백이었다.
이 가사에 붙은 곡조의 원작곡자는 미국의 윌리엄 셰익스피어 헤이스(1837~1907)다. 헤이스는 당대 미국에서 300곡 이상의 대중가요를 발표한 대단히 인기 있는 작곡가였다. 그가 1871년에 작곡한 원곡 ‘오솔길 옆의 작고 낡은 통나무 오두막(The Little Old Log Cabin In The Lane)’은 해방된 흑인 노예가 늙고 병들어 과거를 그리워하는 애수 어린 내용을 담고 있던 대중음악이었다.
이 민요풍의 세속적 선율을 찬송가로 재탄생시킨 인물은 미국의 저명한 음악편집가인 제임스 R. 머레이(1841~1905)였다. 그는 이 가락에 프라이의 영감 넘치는 가사를 얹어 1883년 찬송집 ‘구세군 음악(Salvation Music)’에 수록했다. 그는 “왜 이 좋은 음악을 마귀에게만 빼앗겨야 하는가”라고 반문하며 세상의 노래를 하나님의 노래로 바꿨다. 이는 구세군의 실용적이고 혁신적인 선교 정신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한국에서 이 찬송이 많은 성도의 애창곡으로 자리 잡기까지는 번역자 전영택(1894~1968) 목사의 공로가 절대적이었다. 그는 한국 근대 문학의 거장이자 경건한 신앙을 지닌 목회자였다. 소설가이자 목회자였던 그는 원문의 의미를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한국인의 정서에 들어맞는 정교한 언어로 가사를 재창조해냈다.
이 찬송은 1919년 ‘신증 복음가’에 처음 수록됐으나 당시에는 서양 곡조의 운율과 우리말의 리듬이 어긋나 부르기에 어색한 점이 많았다. 1931년 ‘신편 찬송가’ 편집 위원으로 참여한 전 목사는 문학가로서의 탁월한 언어 감각과 목회적 영성을 발휘해 가사를 새롭게 번역했다. 어색했던 가사는 그의 손길을 거쳐 비로소 우리 정서에 맞는 유려한 문체로 거듭났고 한국 성도들의 가슴에 지워지지 않는 신앙의 언어로 새겨졌다.
이 찬송은 한국 기독교 역사 속에서 성도들의 고단한 삶을 보듬는 특별한 역할을 해왔다. 서구의 엄숙한 찬송가들 사이에서 미국의 민요풍 선율을 기반으로 한 이 곡은 복음이 한국 성도들의 정서 속에 친숙하게 파고드는 통로가 됐다. “예수님은 나의 친구”라는 고백은 엄격한 심판주의 이미지보다 고단한 삶을 위로하는 다정한 동반자로서의 예수를 만나게 했고 이는 한국 교회가 대중적인 생명력을 얻는 영적 토양이 됐다.
특히 1930년대 일제강점기의 한복판에서 전 목사가 다듬은 가사는 나라 잃은 설움 속에 살던 이들에게 각별한 위로를 줬다. “세상이 나를 버려도 주님이 끝까지 돌보신다”라는 구절은 박해와 가난 속에서도 신앙을 지켜내야 했던 백성들에게 위로와 희망을 줬다.
오늘날 우리가 부르는 88장 찬송 속에는 프라이의 헌신적인 신앙과 뜨거운 간증, 헤이스의 서민적인 선율, 머레이의 음악적 포용력, 그리고 전영택 목사의 문학적 영성이 촘촘히 얽혀 있다. 이 곡을 부르는 것은 시대와 국경을 초월해 이어진 신앙의 고백에 동참하는 일이다. 고난의 현장에서 피어난 이 노래는 오늘날 우리 삶의 “골짜기마다 백합화처럼” 고결한 위로를 건네고 있다.
한국찬송가개발원장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s://www.kmib.co.kr/article/view.asp?arcid=177139509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