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드 랭 사인’ 민요 선율에 복음의 메시지를 담다 - 문성모


‘올드 랭 사인’ 민요 선율에 복음의 메시지를 담다 - 문성모

최고관리자 0 87

0653242cf70a6c570e2fd3eada5f0b71_1768725626_8245.jpg

로버트 번스, 조지 톰슨, 찰스 웨슬리(왼쪽부터). 위키미디어 커먼즈
 

‘올드 랭 사인’ 민요 선율에 복음의 메시지를 담다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s://www.kmib.co.kr/article/view.asp?arcid=1766471833


한국 기독교 역사 속에서 찬송가 280장 ‘천부여 의지 없어서’는 교회 안에서의 신앙 고백을 넘어 민족의 근현대사를 관통해 온 특별한 노래다. 이 찬송의 곡조는 스코틀랜드 민요 올드 랭 사인(Auld Lang Syne)으로 영어로 직역하면 올드 롱 신스(Old Long Since)가 되며 우리말로는 ‘그리운 옛날’이라는 뜻으로 풀이할 수 있다. 원래 이 민요의 가사는 오랜 세월 떨어져 지내던 친구들이 다시 만나 술잔을 기울이며 옛 추억을 회상하는 재회의 기쁨과 다시 헤어져야 하는 석별의 아쉬움을 담고 있다.

올드 랭 사인의 역사적 뿌리는 16세기 스코틀랜드로 거슬러 올라간다. 가장 오래된 기록은 1568년 문학 수집가 조지 반나타인이 남긴 반나타인 필사본에서 확인된다. 이 문헌에는 중세 스코틀랜드어로 ‘올드 카인드네스 포겟(Auld Kyndnes Foryett)’라는 제목의 시가 실려 있는데, 곧 ‘잊혀진 옛정’이라는 뜻이다. 이 시의 구절 중에 “올드 랭 사인”이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가사는 18세기 말 스코틀랜드의 국민 시인 로버트 번스에 의해 정리됐다. 그는 어느 노인이 부르는 노래를 받아 적어 대영박물관에 보내면서 “인쇄된 적이 없는 오래된 노래”라고 소개했고 어떤 가락과도 잘 어울릴 것이라는 메모를 남겼다.

당시 번스가 채록한 곡조는 지금과는 상당히 달랐으나, 민요 수집가 조지 톰슨이 번스의 가사에 가장 잘 어울리는 5음 음계 기반의 선율을 찾아 결합했다. 본래 톰슨의 멜로디는 2박자의 빠르고 경쾌한 춤곡 형식이었지만, 이 노래가 19세기 중반 빅토리아 시대의 장례식 졸업식 그리고 새해맞이 행사 등 엄숙한 의례에서 불리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템포가 4분의 4박자에 서정적이고 차분한 분위기로 바뀌었다.

세속적인 민요가 찬송가로 바뀌게 된 결정적 계기는 영국의 찬송작가 찰스 웨슬리에 의해 마련됐다. 그는 친구 존 다우너가 1774년 임종 직전 “Father, I stretch my hands to Thee, No other help I know(천부여 내가 주를 향해 손을 펴오니, 주님 외에는 도울 자가 없나이다)”라는 신앙 고백을 남기고 무릎 꿇은 채 세상을 떠났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이에 깊은 영감을 받은 웨슬리는 그 고백을 기초로 해 6절의 찬송시를 완성했다. 우리나라에는 3절 가사만 소개돼 있다.

웨슬리는 음악의 성(聖)과 속(俗)을 구분하지 않고, 민중의 생명력이 담긴 선율에 복음의 메시지를 얹는 ‘콘트라팍타(contrafacta)’의 원리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콘트라팍타란 이미 널리 알려진 세속적 선율에 새로운 종교적 가사나 전혀 다른 내용을 붙여 부르는 방식이다.

이렇게 탄생한 찬송은 선교사들을 통해 한국에 들어왔고, 1931년 ‘신정찬송가’ 116장에 수록되면서 한국교회의 정식 찬송가로 자리매김했다. 이 찬송의 선율인 스코틀랜드 민요 올드 랭 사인은 5음 음계로 구성돼 우리 민족의 정서와 완벽히 일치했고, 덕분에 교회 담장을 넘어 다양한 삶의 현장에서 각기 다른 가사를 동반하며 긴 생명력을 이어왔다.

이 선율은 안익태의 곡이 나오기 전까지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담은 애국가로 불리기도 했다. 윤치호가 펴낸 찬미가(讚美歌) 1908년판(재판본)에는 “동해물과 백두산이 말으고 달토록 하나님이 보호하사 우리 대한 만세”라는 가사를 올드 랭 사인 곡조에 맞추어 부르라는 지시어가 있다. 동시에 이 곡은 이별과 재회를 상징하는 가사를 동반해 ‘이별가’ ‘졸업가’ ‘송년가’ 등의 노래로 온 국민의 사랑을 받았다. “오랫동안 사귀었던 정든 내 친구여 작별이란 웬말인가 가야만 하는가, 어디 간들 잊으리오 두터운 우리 정, 다시 만날 그날 위해 축배를 들어라.”

또한 근대기 음악가들이 펴낸 창가집에서도 이 선율은 다양한 가사를 동반한다. 1916년 홍난파가 발행한 통속창가집에 실린 ‘어머님 뵙겠네’는 돌아가신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사모곡이자 천국을 소망하는 신앙심을 절절히 담아내고 있다. “사랑하던 내 어머님 어데로 가셨나, 오 내 동생아 어머님 천당에 가셨다. 온 세상이 괴로웁고 다 쓸쓸하고나, 나 어서 천당에 가서 어머님 뵙겠네.”

그런가 하면 1921년 이상준의 ‘중등창가집’에 수록된 ‘학업성취’는 청년들에게 꾸준한 노력을 독려하는 계몽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며 시대의 과제를 노래했다.

이 선율은 한국교회의 가장 강력한 회개와 부흥의 도구로 정착됐다. 성(聖)과 속(俗)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든 이 노래의 역사는 음악이 인간의 삶과 신앙을 얼마나 깊게 연결할 수 있는지 증명한다. 우리가 이 찬송을 부를 때, 단순히 과거의 노래를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민족의 고난과 희망, 그리고 개인의 고백이 녹아든 거대한 서사를 함께 부르는 것임을 기억해야 한다.


한국찬송가개발원장

0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