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석(孤石) 김명엽의 삶과 음악 - 문성모


고석(孤石) 김명엽의 삶과 음악 - 문성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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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석(孤石) 김명엽의 삶과 음악

문성모

(전 서울장신대학교 총장/ 한국찬송가개발원 원장)

1. 김명엽의 삶과 음악 활동

김명엽은 194483일 중국 선양에서 출생하였다. 일제의 압제를 피해 중국으로 피신한

그의 가족은 이듬해 해방이 되자 평안북도 정주로 이주하여 1948년까지 살았다. 김명엽은 스

스로 정주를 고향이라고 생각한다.

1948년 공산당의 박해를 피하여 그의 가족은 서울로 내려왔고, 갈월동에 부모와 할아버지,

삼촌, 고모 부부와 함께 이웃하며 살았다. 그러다가 6세가 되던 해에 6.25 전쟁이 발발하였는

, 전쟁 초기에 그는 부모를 한꺼번에 잃고 고아가 되는 불행을 겪었다. 그 후 그는 자녀가

없던 고모의 슬하에서 자라게 되면서 자연스레 고모의 가정에서 신앙생활에 입문하였다.

1-1. 교회음악가로서의 꿈을 꾸다

김명엽의 음악은 교회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그는 중학교 시절 교회 성가대원으로 노래를 부

르기 시작했다. 그는 문학에도 소질이 있어서 본래는 국문과로 진학하여 문학도가 되고 싶었

.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일찍부터 음악인으로 택하시고 그 길로 인도하셨다.

김명엽은 명문 기독교 학교인 대광고등학교에 진학하였다. 그는 우연히 도서관에서 바하(J.

S. Bach)에 관한 책을 보게 되었는데, 그 책을 읽고 감동한 나머지 바하처럼 하나님을 찬양

하는 음악가가 되겠다고 결심을 하였다. 당시 대광고의 음악 교사는 김두완 선생이었다. 그는

자타가 공인하던 최고의 교회 음악인이었고, 그의 지도 아래 김명엽은 점점 더 교회 음악가로

서의 꿈을 키워갔다.

김명엽은 스승 김두완처럼 교회음악가로서 합창 지휘를 하고 싶었다. 그러나 당시 한국에는

합창 지휘과가 없었다. 그는 교회음악을 위한 합창 지휘를 공부할 수 있는 대학을 찾았다.

행히 연세대학교의 신과대학 안에 종교음악과가 있었는데, 그는 성악 전공으로 입학하였고,

본격적으로 노래와 더불어 합창 지휘를 전공할 수 있게 되었다.

김명엽은 연세대 종교음악과에서 훌륭한 스승을 만나게 되었다. 음악과장이었던 박태준,

창 지휘를 가르치던 곽상수, 그리고 테너 이인범 교수 등 당대 최고의 교회음악인들로부터 그

가 배우고 싶은 것을 마음껏 공부할 수 있었으니 이는 하나님의 은혜였다. 그 밖에도 김명엽

은 박재훈, 장수철, 구두회 등 소위 평양요한학교 삼총사로 불리던 선생들과 접촉하며 그의

교회 음악가로서의 꿈과 실력을 키워나갔다.

연세대에는 또 한 분의 위대한 스승이 있었다. 종교음악과는 아니지만 작곡가 나운영 교수

가 김명엽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한국적인 것의 소중함과 또 작곡에 대한 열정을 배운

것이다. 나중에 김명엽은 교회음악 합창지휘자와 성악가로 활동하였지만, 작곡가로 많은 작품

을 남긴 것은 나운영 선생의 영향이 크다고 보아야 한다. 그리고 한국 성가곡을 사랑하고 격

려하고 연주하려는 의지도 스승 나운영으로부터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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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성가대 지휘자 김명엽

김명엽은 대학 시절 원효로 1가에 있는 성광교회에 출석하고 있었다. 담임 김동수 목사는

한국 최초의 예배학자로 유명하다. 그는 특별히 예배를 소중하게 여기고 교회력에 의한 예배

를 최초로 도입하였다.

김동수 목사는 특히 예배 중에 음악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성광교회 성가대 지휘자로는

구두회, 김두완 같은 유명인사가 있었다. 김동수 목사는 대학생 김명엽에게 어린이성가대를

맡아 육성시켜줄 것을 부탁하였다. 김명엽은 1963년부터 성광교회 어린이성가대를 지휘하면서

본격적인 합창지휘자의 길로 들어선 것이다. 그때 그와 함께 한 반주자는 나중에 연세대 교수

가 된 조명자였다. 성광교회에서 어린이성가대와 학생성가대를 맡았던 김명엽은 대학 졸업 후

김두완 선생의 뒤를 이어 성광교회 어른 성가대 지휘자가 되어 예배를 도왔다.

김명엽은 무려 29년 동안 성광교회 성가대 지휘자로 섬겼다. 그러는 동안 그는 44세에 장

로 장립을 받았다. 그 후 그는 1993년 소망교회 성가대 지휘자로 부임했다가, 2001년 새문안

교회 성가대 지휘자가 되었다. 그리고 2009년부터는 남대문교회 지휘자로 초빙받아 지금까지

섬기고 있다.

그의 평생은 성가대 지휘자의 삶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그는 교회음악을 사

랑하였고 성가대 지휘자라는 자리를 소중하게 생각하였다.

1-3. 합창단 지휘자 김명엽

김명엽은 경신고, 대광고 교사로 있을 때부터 학교 합창단을 만들어 공연하였고, 연세대 교

수로 재직할 때도 합창단을 조직하여 활동하였다. 또한 그는 1980년부터 서울시립소년소녀합

창단, 2005년부터 국립합창단, 2007년부터 울산시립합창단과 한국장로성가단, 2012년부터 서

울시합창단 지휘자를 역임했고, 여러 합창단의 객원 지휘자로 연주하는 등 그의 합창지휘자로

서의 경력은 화려하다.

김명엽의 합창지휘자로의 최고 업적은 서울바하합창단을 창단하고 수많은 연주를 통하여 한

국교회음악의 수준을 높인 것이다. 그는 오스트리아 빈에서 공부하는 동안, 교회음악 연주회

가 교회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것을 경험하며 큰 감명을 받았다.

김명엽은 귀국 후에 제자들 80명을 모아 1990102일 서울바하합창단을 만들고, 같은

1214일에 성광교회에서 바하의 <크리스마스 오라토리오>를 연주함으로써 대장정의 막

을 올렸다. 그는 교회음악을 교회에서 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교회는 성가

발표회를 할 수 있는 가장 적합한 장소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김명엽은 바하합창단은 반드시 교회에서만 연주한다.”라는 목표를 세우고 수많은 교회를

음악회장으로 만들었다. 또한 그는 이 합창단을 통하여 많은 한국 작곡가의 작품을 발굴하고

소개하는 일을 지금까지 감당해오고 있다. 구두회, 박재훈, 김두완, 이동훈, 이용주, 주성희,

이영조, 이기경, 한태근, 문성모 등의 작곡가들이 김명엽의 서울바하합창단이 주최한 <성가의

>을 통하여 작품을 발표할 기회를 얻었다.

 

 

이하 글 링크입니다. (한국음악퍙론가협회)

고석(孤石) 김명엽의 삶과 음악 - 문성모 (kormc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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